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윤치호 일기 (문단 편집) == 기타 == 당시 유교의 영향이[* 윤치호는 서얼이라 과거 응시자격도 없어 조선 기준으로 사대부에 못 낀다. 아버지 윤웅렬도 서얼에 무관이라 정통사대부가 아니다. 구한말이 아니라 조선 후기만 하더라도 서얼집안 출신으로 잘해봐야 무관이나 역관 정도 벼슬만 가능하다. 다만 윤치호는 아버지가 아들의 천재성을 알아보고 기대를 많이 걸었기에 사대부에 준하는 수준까지 교육을 받을 수 있었다.] 어느 정도 남아 있던 청년 시절의 한문 일기에는 유달리 일기 첫머리에 愼(삼갈 신)자가 항상 들어가 있는데, 일기 내용상 그렇게 삼가서 행동하지 않은 듯한 날에도 적어둔 걸 보면 일종의 좌우명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는 그의 아버지인 윤웅렬과 윤치호 특유의, 최대한 적을 만들지 않으면서 살고자 했던 처세 방식을 떠올리게도 한다. 또는 '홀로 있을 때도 마음을 살펴 몸가짐과 마음가짐을 바르게 함'이라는 성리학의 용어인 신독(愼獨)을 지칭하는 것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숨김없이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일기에 모두 적은 것도 신독의 일환이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당시 쓴 일기 중 1884년 5월 15일자에는 KYEKANヲシタ(KYEKAN오 시타 = KYEKAN을 했다)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가 있는데 이것이 ''''[[계간]]''''(鷄姦)을 뜻하는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이것이 사실인지는 알 수 없지만 국사 편찬 위원회에서 운영하는 한국사 데이터 베이스에서는 [[http://db.history.go.kr/item/level.do?levelId=sa_024_0020_0050_0210|실제로 그렇게 해석해놓고 있다.]] 정말 계간이라고 해도 단순한 남색인지 [[양성애]]인지는 알 수 없다. 이 대목들 말고도 곳곳에 [[일본어]]와 [[근대 한국어]]로 주변인의 [[전보]]나 대화 등을 원어 그대로 인용해 놓은 부분들이 많아 사료적 가치가 높지만,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제공하는 번역은 이러한 디테일들이 많이 누락되어 있는 편이다. 손글씨를 전산화하는 과정에서 오자가 많이 생겨 내용 판독이 어려운 탓인 듯. 문학 사상사에서 일제 강점기 시기 일기 중 중요 대목을 발췌 번역한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3&oid=001&aid=0006021023|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라는 책이 나와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